법원 ‘퇴직자 조직적 재취업’ 유죄...“퀄컴 과징금 일부 취소”

 
 
2019년 1월 31일은 공정거래위원회 역사에 있어 ‘가장 힘들었던 하루’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조직적인 차원에서 퇴직자들을 대기업에 취업시키면서 기업의 인사 등에 관한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이날 1심법원이 전 위원장·부위원장과 운영지원과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대법원은 글로벌 통신칩셋 및 특허 라이선스 사업자 퀄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등 부과 취소소송 사건에 대해 뒤늦게 과징금 일부를 취소하라며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재취업 비리 판결 후 “법원의 1심 판단에 대해 위원장으로서 지난 과오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부 혁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업무방해죄가 요구하는 위력행사 해당”

서울중앙지법 제32형사부(성창호 부장판사)는 31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신영선 전 부위원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뇌물수수 혐의를 함께 받은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이 선고하며 보석을 취소하고 재수감했다.

공정위 전 운영지원과장 2명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반면 김동수·노대래 전 공정위원장과 한모 전 사무처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업무방해죄가 요구하는 위력 행사와 관련 “대법원 판례 등에 의하면 위력이라 함은 사람의 자유 의사를 제압·혼란하게 할 만한 일체의 세력으로,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이를 묻지 않고 폭력·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등도 이에 포함된다”며 공정위 조직적인 퇴직자 재취업은 위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가 중앙행정기관으로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이라는 업무 권한을 행사하면서 대기업 업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 사건 업무방해와 관련한 취업을 요청하면 기업은 불이익을 염려해서 어쩔 수 없이 채용하게 되었다는 기업 관계자의 진술이 있었고, 또 공정위가 먼저 기업체에 취업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공정위 퇴직자가 이미 취업한 자리도 기업체가 없애기 쉽지 않아 이 자리에 퇴직자가 새로 취업하는 경우에는 기존에 행사된 위력이 지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방해죄가 요구하는 위력행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취업 요청을 거절하는 기업도 있었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에 대해 ”이 사유만으로 위력 행사가 없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개별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련 “정재찬 전 위원장, 김학현·신영선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 근무기간이 길어 공정위 퇴직자들의 재취업 과정에 대해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외부 출신으로 취임한 김동수·노대래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나서서 기업체에 퇴직자 취업을 요구하고 채용되도록 한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 지적했다.

한 전 사무처장에 대해서는 “사무처장 재직 당시 위원장이 과장급 인사에 관여하지 말도록 지시해 재취업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17년 1월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로 재취업하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지 않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철호 현 부위원장에 대해 “당시 관련 법령은 중소기업중앙회와 같은 협회의 협회는 취업제한기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점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지철호 부위원장은 기소된 후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자신을 업무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이날 무죄 판결 후 거취를 묻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위원장과 상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퀄컴 사건 대법원서 파기환송...“500억대 과징금 환급” 처지

공정위는 2009년 미국의 퀄컴 인코포레이티드(QI)와 한국퀄컴(주), (유)퀄컴 씨디엠에이테크놀로지코리아(이하 퀄컴)가 CDMA 이동통신 기술을 휴대폰 제조업체에 라이선싱하면서 로열티 차별, 조건부 리베이트 제공 등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등을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731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같은 해 12월 30일 작성된 의결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퀄컴의 차별적 로열티 부과행위에 대해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공정거래법 제3조의2 제1항 제3호), 부당하게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1호)에, 조건부 리베이트 제공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하여 거래한 행위(공정거래법 제3조의2 제1항 제5호 전단)에, 특허권 소멸 후 로열티 부과에 대해서는 자기의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입법 목적 등을 고려해 경합 적용해 부과 과징금을 각각 2731억9700만원, 800억8500만원으로 산정했지만 법 위반 행위의 기초가 되는 사실이 하나인 점을 감안해 법정 과징금 부과기준율이 보다 높은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 규정 위반에 따른 과징금만 위반행위에 주요한 역할을 한 퀄컴 인코포레이티드에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퀄컴 측은 의결서를 받은 후 다음해 2010년 2월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본안 소송과 함께 시정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했다.

서울고법 제6행정부는 2013년 6월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청구를 기각하고 한국퀄컴(주), (유)퀄컴 씨디엠에이테크놀로지코리아에 부과한 시정명령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패소한 퀄컴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일부 패소한 공정위도 함께 상고했다.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같은 해 7월 재판부(특별1부)를 배당하고 11월 주심대법관을 지정했지만 각국 입법례·판례의 참고 가능 여부를 심층 검토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선고기일을 잡지 않다가 지난해 8월 쟁점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 재판부는 상고가 제기된 지 5년 6개월 만에 선고기일을 잡았다.

▲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를 위해 산출한 관련 매출액 내역. [출처=공정위 의결서]
▲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해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를 위해 산출한 관련 매출액 내역. [출처=공정위 의결서]
대법원 특별1부는 31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파기환송 내용에 대해 “과징금 일부를 취소하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줄어드는 과징금은 부과한 금액의 20% 가량”이라고 공정위 측은 설명했다.

1981년 4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으로 출범한 공정위는 31일 서울중앙지법과 대법원의 판결로 앞으로의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퀄컴으로부터 받은 과징금 중 500억원 안팎의 금액을 되돌려 줄 처지에 몰렸다.

노태운-김순희 기자 noh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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