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만원에 걸려 언감생심…“가격상한 올릴 때 됐다” 목소리

다단계판매업에 적용되는 상품의 가격상한 160만원(부가세 포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다단계판매 업체는 가격이 160만원을 넘는 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 방문판매법 시행령에 판매 가능한 개별재화의 가격 상한선을 160만원으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단계판매는 방문판매법 적용을 받는 합법적인 유통채널이지만 편의점, 온라인쇼핑, 홈쇼핑, 백화점 등 다른 유통채널과 달리 취급하는 상품에 대한 가격제한이 존재한다.

상품 가격 제한으로 다단계판매 업체들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단계판매업의 주력 상품군이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으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이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8월 공개한 2020년도 다단계판매업자 주요 정보공개에 따르면 주요 취급 품목은 건강식품, 화장품, 통신상품, 생활용품, 의료기기 등이며, 상위 10개사 매출액 상위 5개 품목(총 50개) 중 건강기능식품 및 화장품이 44개로 8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상위 10개 다단계판매 업체는 한국암웨이, 애터미, 뉴스킨코리아, 피엠인터내셔널코리아, 유니시티코리아, 한국허벌라이프, 유사나헬스사이언스코리아, 시너지월드와이드코리아, 매나테크코리아, 시크릿다이렉트코리아다.

다단계판매 업체가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외에 실생활에 필요한 TV,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안마의자 등 생활가전 및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싶어도 160만원 가격상한에 걸려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한국암웨이의 홈리빙 상품은 공기청정기, 정수기, 인덕션레인지, 비데 등에 불과하다. 한국암웨이의 가장 비싼 제품은 ‘암웨이공기청정기 엣모스피어 스카이’로 가격은 158만원이다. 암웨이퀸(21pcs) 111만원, 이스프링 정수기(퍼싯) 105만원, 암웨이 퀸 인덕션레인지 48만6000원이다.

애터미의 생활가전 제품으로는 애터미 대형 공기청정기(68만원), 애터미 스팀 가습기(19만8000원), 애터미 풀 케어 비데(42만8000원), 애터미 세라믹 스마트 온열매트 (29만8000원), 애터미 헤어 드라이어(6만9000원), 애터미 IH 헤어 스타일러(17만6000원)가 있다.

지난해 매출 3위를 기록한 유니시티코리아의 경우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외 세제, 칫솔, 치약, 비누 등의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다수 다단계판매 업체들도 160만원 가격상한 규제로 인해 주력 제품군인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및 일부 생활용품 판매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 때문에 다양한 상품 취급할 수 없어”

다단계판매 업계가 160만원 가격상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상품을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단계판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을 취급하기 위해 검토하다 보면 가격 때문에 포기한 적이 많다”면서 “다단계판매라는 이유만으로 160만원 이상 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 보니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에 따르면 다단계판매 업체 중 TV,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을 판매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네이버에서 'LG전자-세탁기-건조기-일체형'을 검색하면 가장 낮은 가격이 219만2060원으로 나온다. [사진출처=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 주부들이 선호하는 삼성전자 866L '비스포크 4도어 냉장고'의 네이버 쇼핑 최저가는 213만원으로 나타났다.

주부들의 선호도가 높은 삼성전자 866L '비스포크 4도어 냉장고 RF85A9241AP(색상조합형)는 이달 25일 기준 네이버 최저가는 213만원으로 나타났다. 최대혜택가는 195만4600원이다. 같은 날 기준 LG전자 세탁기·건조기 일체형 상품의 네이버 검색 결과 최저가는 219만2060원이다.

최근 건조기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탁기 교체 때 세탁기·건조기 일체형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가전업체들도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해 세탁기·건조기 일체형 제품 출시에 주력하고 있다.

다단계판매원이 생활가전을 교체할 때 본인이 활동하는 다단계판매 업체가 취급하면 제품 구매와 함께 후원수당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된다. 이는 다단계판매원 자신이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다단계판매가 갖는 대표적인 장점 덕분이다.

최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안마의자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다단계판매 업계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안마의자 판매가 여의치 않는 실정이다. 안마의자의 경우 아직 시장 진입 초기단계라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효도선물’로도 인기가 높아 소비수요가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가격제한 때문에 다단계판매 업체들은 취급이 어렵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브랜드의 안마의자 경우 250만~400만원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160만원 가격상한 규제로 다단계판매 업체들이 취급할 수 없는 제품은 생활가전, 안마의자 외에도 다양한 제품군이 있다.

◆상한액 2012년 이후 ‘10년째 그대로’

방문판매법 제23조(금지행위) 제1항 제9호는 “다단계판매자는 상대방에게 판매하는 개별재화 등의 가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을 초과하도록 정하여 판매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30조에 ‘대통령으로 정하는 금액이란 160만원(부가세 포함)’으로 명시하고 있다.

개별재화 가격상한은 2012년 8월까지 130만원이었지만 전부 개정된 방문판매법과 시행령이 같은 달 18일 시행되면서 160만원으로 상향되었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

다단계판매 업계가 160만원 가격상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두 번째 근거는 지난 10년 동안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단계판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0년 동안 소비자물가가 굉장히 많이 올랐는데 다단계판매 업체들은 아직도 160만원 가격상한에 걸려 다양한 제품 및 고기능 제품을 취급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최소한 10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가격제한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160만원 가격제한을 완화할 경우 값싼 제품을 비싸게 판매해 후원수당을 과다 지급해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상품을 300만원에 판매해 후원수당으로 35%를 지급할 경우 35만원에 불과한 후원수당이 105만원에 달할 수도 있어 가격 대비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가격만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는 지나친 기우에 불과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제품의 질과 가격을 비교하는게 가능한데다 과거보다 훨씬 현명해진 소비자들은 이제 비현실적인 가격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단계판매원들도 제값 못하는 상품을 비싸게 판매할 경우 하위판매원 모집이 쉽지 않아 조직 확대에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가격상한 상향에 따라 사행성 조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훨씬 낮아졌다.

현재 일부 다단계판매 업체는 여러 개의 단품을 묶어 200만원 등으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이 있다. 단품을 묶어 패키지로 판매할 경우 160만원 가격상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의 매출이 상승하거나 사행성 조장으로 급성장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매출이 하락하거나 횡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단계판매원이 후원수당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단기간에 직급 상승할 수 있게 패키지상품을 자주 내놓은 다단계판매 업체가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가격제한을 상향한다 하더라도 사행성 조장으로 이어질 확률은 높지 않다. 현재 다단계판매 업계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다단계판매 업계는 지난 10년의 실적을 보면 건전하게 성장하며 취업 취약 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유통채널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본지 취재 결과 다수의 다단계판매 업체 관계자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소비자 기호 변화 등을 감안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개별재화 가격상한을 300만원 전후로 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다단계판매 개별재화 가격상한액은 방문판매법이 아니라 시행령에 규정돼 있어 국회의 법 개정 없이 주무부처인 공정위가 시행령 개정에 나선다면 풀 수 있는 문제다.

최근 공정위 특수거래과도 다단계판매 업계의 규제 완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해당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0일 열린 ‘방문판매법의 개정 방향’학술대회 발표를 통해 “다단계판매에 적용되는 개별재화 가격상한 규제는 대인판매ㆍ연고판매에 의존해 판매조직의 확대에 따른 이익의 증가를 미끼로 사행성을 유발하고 후원수당을 지급받고자 하는 판매원들의 무분별하고도 적극적인 고가 상품 판촉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의 정당성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제품의 특징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일정 금액 이상의 거래를 금지하도록 하는 것은 사적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으며, 특정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통제로 인해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의 유통을 원척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소비자의 권리 침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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